와운명품마을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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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 와운명품마을의 법정리에 따른 구분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이며, 행정리에 따른 구분도 이와 같습니다.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 산 중턱에 위치한 해발 800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14가구에 33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2015년 지리산국립공원 내 마을 중 처음으로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지로 선정되었으며, 지리산 와운명품마을은 해발 800m 고산준령에 위치하여 구름도 누워 간다는 뜻으로 와운(臥雲)이라 하였으며, 눈골 또는 누운골이라고도 합니다.
반야봉과 명선봉 간의 기암괴석과 옥류인 뱀사골의 비경이 있습니다..
동서로 뻗은 마을 뒷동산 능선의 가운데에 천연기념물 제424호인 지리산 천년송(할매소나무)이 있음. 위쪽 20m 지점에는 할매소나무보다 좀 더 작은 할아시(할아버지)소나무 한 그루가 더 있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당산제를 지냄.

마을연혁

595년경 영광 정씨와 김녕 김씨가 국난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 깊은 계곡을 찾아가다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아 피난처로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겨나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살아오고 있습니다

1595년경 영광 정씨와 김녕 김씨가 국난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 깊은 계곡을 찾아가다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아 피난처로는 최적지라 생각하여 안심하고 정착하였습니다
1700년경 반선 일명 금포정에 인가가 입주한 후 현재 국립공원의 관광지로서 개발이 되고 있습니다.
1914년 본래 운봉의 산내면 지역으로 눈골, 누운골 또는 와운이라 했는데 행정구역 통폐합때 반산리, 미동, 와운리, 하부운리, 개선리가 병합되어 부운리에 편입되었습니다
1951년 6.25사변(빨치산 토벌작전시)으로 지리산이 공비의 소굴이돼 전 주민이 피난 이주 하였다가 1954년 수복과 함께 다시 입주하였습니다
1958년 뱀사골의 산림을 베어내기 위해 통나무로 가교를 설치하고 벌목을 운반하기 위한 산판도로가 개설 되었는데, 당시 벌목은 1차, 2차, 3차로 나누어 실시 하였으며, 인가가 곳곳에 떨어져 살기도 하였습니다.
1969년 덕동초등학교 와운 분교가 개설되었으나 1984년에 폐교 되었습니다
1976년 와운교를 새마을 사업으로 가설하였습니다
1977년 지리산 전적비 및 기념관을 개관하였고, 지리산 국립공원 뱀사골 산 중턱에 위치한 해발 800m의 고지대에 위치하여 기암절벽과 깨끗한 물, 계곡, 수목 등이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농업은 고랭지로 수확이 저조하여 한봉으로 소득을 올립니다
1993년 요룡대에서부터 와운마을에 진입하는 세월교 2개소와 1994년에서 1997년까지 진입로와 마을 안길의 포장사업을 마쳤습니다
1994년 간이상수도사업을 보수사업으로 10,000천원 지원 받아 실시하였고, 또한 마을내 옛 건물을 복원하기 위하여 입식 부엌 개량사업을 지원하여 개조된 초가 지붕을 지금도 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995년 민박사업을 비롯 휴양촌을 가꾸기 위하여 마을내 주택개량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여 관광 휴양촌을 가꾸기 시작합니다
1996년 마을 오수처리시설을 1억원을 들여 남원시 주택과에서 추진하여 와운마을의 오수정화 현대화
1996년~1997년 반선집단시설지구의 상수도보수공사가 2억원을 들여 40톤의 배수지를 신설하고 지하암반 관정 2공을 착정하여 반선집단시설지구의 생활용수 공급을 원활하게 하였습니다
1997년 반선 집단시설지구의 오폐수정화시설사업으로 지하 정화 구축물을 반선주차장에다 설치하였으며, 3억을 지원 기계실을 마련함

출처 : 남원시 마을유래(남원시,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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